열여섯, 나와 유관순
상산고등학교 1학년 8반 김세연
중학교 3학년 1학기 때의 일이었다. 중학교 3학년이면 우리나라 나이로 열여섯 살이다. 열여섯 살은 어떤 나이일까? 예전에 읽었던 <인어공주>에는 열여섯 살 생일이 되어야 바다에서 얼굴을 내밀어 다른 세상을 볼 수 있었다. 주인공 막내공주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열여섯 살 생일에 마침내 고개를 내밀어 바다왕국이 아닌 다른 세상을 보았다. 인어공주는 그 때 왕자를 보았고, 사랑에 빠졌다.
중학교를 졸업하면 진짜 열여섯 살이 되는데 나는 어떤 세상을 봐야 하는지 고민이 아주 많았다.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내가 원하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이 많았다. 어떤 고등학교를 진학해야 나의 장래를 위해 좋은 선택인지 고민하다가 대부분의 성적 상위권 학생들이 그러하듯이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생각하고 준비하던 특목고 진학을 목표로 삼게 되었다.
특목고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학교 내신 성적이 중요하다. 그런데 3학년 1학기 기말고사를 치르고 난 뒤에 내적갈등을 일으키는 큰 사건이 생겼다. 시험 채점할 때 분명히 한 문제가 틀렸는데 채점 결과 확인할 때 보니 만점이었다. 선생님께서 실수하신 모양이었다.
순간, 나는 갈등 속으로 빠져들었다. 어떤 문제에 대해 갈등한다는 것은 마음속에 악마가 들어섰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는데 나도 그러한 유혹에 빠져들었다. 내 마음 속에는 악마와 천사가 동시에 살고 있었다.
“이걸 어떻게 하지? 그냥 모른 척 넘어가서 고등학교 입시에 도움이 되도록 내버려 둘까?” 악마가 속삭였다.
“아니야, 그럴 수 없어. 이건 부정한 방법이야.” 천사가 악마의 속삭임을 밀어냈다.
“야, 2점이면 등급이 바뀌잖아? 2점 받기 쉽지 않잖아. 2점만 더하면 만점이니, 볼 것도 없이 1등급이잖아. 그냥 둬!” 악마가 말했다.
악마의 말은 달콤했다. 순간 머리가 하얗게 비워져 버리는 것만 같았다. 나는 친구들과 수다를 떨지도 못하고 수업에 집중할 수도 없었다. 조용히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순간 내 마음속 어디선가에서 천사가 나타나 양심을 건드리며 말했다.
“세연아, 지금 네가 그렇게 부정한 방법으로 2점 더 맞으면 기분은 좋겠지만, 그 2점이 앞으로 네 가슴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나서 부정한 천 점, 만 점이 될 거야.”
“괜찮아, 그냥 둬.”
“안 돼. 앞으로 반드시 후회하게 될 거야.” 천사가 강하게 말했다. “당장 선생님을 찾아가 사실대로 말해.” 라고 말하며 천사는 내 팔을 잡아끌었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지체 없이 교무실로 선생님을 찾아가서 사실을 말씀드리고 본래의 점수를 받겠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약간 당황하시는 듯했다. 그렇지만 곧 환하고 인자한 미소를 지으셨다 .
“세연이는 역시 공부만 잘하는 것이 아니구나.”
라고 하시며 매우 자랑스러워했다. 나는 선생님께 아까 고민했던 순간을 말씀드렸다.
“사실은 많은 갈등을 했었는데 이렇게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나니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아요. 마음이 너무 편해 졌어요.”
그러자 선생님은 말씀을 이어가셨다.
“세연아 너 혹시 유관순열사 전기를 읽어보았니?”
나는 당황했다. 솔직히 유관순열사 전기를 읽어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워낙에 유명하기 때문에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잘 모르고 있는 위인 중의 한 사람이 바로 유관순열사였다.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하하, 너무 그럴 거 없어. 앞으로 읽어보면 되는 거지.”
“예, 죄송해요.”
“죄송할 거 없어. 유관순열사가 학교 다닐 때 마음 속으로 이런 기도를 했단다. 난 잔다르크처럼 나라를 구하는 소녀가 될 거야, 누구나 노력하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나이팅게일처럼 남에게 봉사하는 천사와 같은 마음을 갖게 해주소서, 라고 말이야.”
나는 마음속으로 부담이 크게 되었다. ‘내가 감히 유관순열사를...... 그냥 평범한 여학생이 어찌 위인을 따라갈 수 있단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일이야.’ 라고 생각했다.
“세연아, 누구나 잔다르크가 될 수 없고, 나이팅게일도 될 수 없어. 게다가 유관순 열사는 더더욱 어렵지. 그러한 위인들을 쏙 빼닮으라고 하는 것은 아니야. 그들의 정신과 가치를 받아들이고 조금이라도 따라가면 되는 거야.”
선생님 말씀에 나는 속으로 조금 안심했다. 유관순 열사가 될 수는 없겠지만 유관순 열사의 정신을 배우기 위해 지금부터 하나하나 노력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이 일로 선생님께서는 나에게 커다란 상을 안겨주셨다. 학교 생활기록부에 “교사의 실수로 성적이 잘못 되었을 때 학생이 정정을 요구하는 정직한 태도를 보여 다른 학생들의 귀감이 됨”이라고 그날의 에피소드를 소상히 기록해 주셔서 나의 개인적 역사에 남게 되었다. 이 사건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뿌듯하고 양심에 따라 행동한 내 자신이 무척 자랑스럽다. 이 사건 이후로는 큰 고민 없이 정직을 바탕으로 모든 갈등상황을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으며, 어떤 선택 상황에서도 고민하지 않고 도덕성을 바탕으로 한 정직한 나의 모습을 보면 도덕적으로 많이 성장한 것 같아서 스스로 무척 자랑스럽다. 내 마음속에 한그루의 튼튼한 도덕나무가 자라고 있는 것이다. 또한, 나는 선생님은 단순히 학교에서 교과를 가르쳐주시는 분으로만 생각했었는데, 선생님께서는 나에게 세상을 만나는 방법을 넓게 보도록 지도해 주신 선생님이셨다. 나를 일깨워주신 선생님의 사랑은 영원히 기억 될 것이다.
나는 지금 유관순 열사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일제에 항거해 아우내 장터에서 “대한 독립 만세”를 부른 나이인 만 열여섯 살이 되었다. 열여섯 살은 다른 세계로 나가는 첫 문을 여는 나이다. 유관순 열사는 양심의 목소리에 따라 자신을 희생하여 조국과 민족을 위한 문을 열었다. 나는 어떤 문을 열 것인가? 어떤 문을 여느냐에 따라 지금 내 앞의 삶도, 미래도 달라질 것이다. 유관순 열사를 따라 배우며 내 앞의 미래를 상상하면서 고등학교 생활을 정직하고 성실하게, 열정적으로 보낼 것이다. 내 양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